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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여러 민족에 대해 알아보자 (스압주의)

늘그랬듯이 2022. 12. 1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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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again_12138

 

현재 중국은 한족 중심의 사회지만 54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함. 대표적으로 위구르족, 티베트족이 있고 이외에도 좡족, 만주족, 조선, 몽골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중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음.
 
현재 영토는 만주족이 넓힌 영토이며 역사의 적지 않은 부분이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역사임. 사실 한족은 생각보다 피지배계층의 역사가 김. (대표적으로 금, 원, 청 등이 있음 한족 왕조라고 생각하는 당나라도 사실은 선비족의 나라임)
 
쨋든 중화사상과 화이사상이 개빡치고 소수민족이 한족화되고 모국이 존재하는 민족들이 중국의 소수민족화된 것이 안타까워서 중국의 민족에 대해 알아봄.

 

1. 한족

한족 대표도시

한족 도시의 모습

한족 내륙도시

한족

사실상 중국의 주요 민족. 중국티베트어족으로 황하강 일대에 거주하였던 민족. (황하강 하류 지역을 '중원'이라고 부름)
 
중국 인수의 92% 13억이나 됨. 하지만 이를 중국 국영 연구소가 부정함. 정부의 공식 인구조사에서는 92%나 한족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남북간의 유전자 차이가 존재하며 북중국의 경우 한족의 피재배계층 역사가 김.
 
또한 청나라 시절 성씨가 없던 사람들이 중국의 건설 이후 한족의 성씨를 부여받아 그들이 모두 한족으로 기록됨. 이들이 80%나 됨. 

 

2. 위구르족

동투르키스타의 기

위구르 지도(신장위구르자치구)

위구르 도시

위구르 도시

위구르의 수도 우루무치

아랍문자를 차용해서 쓰는 위구르어(사진은 중국의 위구르어 교과서)

위구르족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민족임. 중국에서는 웨이우얼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함.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터키, 사우디, 파키스탄 등에서도 거주하고 있음.
 
위구르족의 조상은 유목민 가오처족이며 다른 나라나 민족에 복속되어 있던 부족사회의 위구르족은 744년 바스밀, 카를룩 등의 부족과 함께 돌궐 제2국을 멸망시키고 외튀겐산부터 몽골고원을 정복하여 위구르 제국을 세움.
 
오르콘 위구르 제국, 유고르, 카라코야 왕국, 카라한 왕조 등을 거친 위구르족의 국가들은 청나라에 침공 당함. 수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중간에 청나라를 몰아내기도 하였고 지역정권을 세우기도 하였음.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가 몰락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될 무렵 위구르의 통제가 약해졌고 여러 군벌과 강대국 사이에서 위구르는 분열됨. 1944년 국공내전이 일어난 틈을 타 위구르족과 타림분지의 소수민족들은 동튀르키스탄공화국 임시정부를 수립함.
 
하지만 곧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였고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부르한 샤히디'가 중국 공산당의 병합을 선언하여 위구르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 됨.
 
중국의 탑배우 디디러바가 위구르족이며 출생지도 위구르의 도시 우루무치임.

 

3. 티베트족

티베트 기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위치한 포탈라궁

티베트 도시

티베트 도시

아시아계 민족이며 주로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에 거주하고 있음. 한국인, 일본인, 북부지역의 한족과 유전적으로 상당히 가까움.
 
티베트 지역에서 약 1만여 년 전 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으며 티베트 고원에는 옛부터 지속적으로 국가가 존재하였음.
 
한자로 기록된 역사는 7세기 초 남리루쩬 왕이 중국으로 사신을 보낸 기록임. 티베트 지역의 토번 왕국은 당나라를 굴복시키기도 하였으며 당나라에게 공물을 받기도 하였음.
 
이후 티베트는 원나라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고 피지배층인 한족보다 더 높은 지위를 확립했으며 청나라의 보호령이었던 시기에도 한족보다 우대받아 만주족과 동급의 지위를 확립함.
 
1912년 청나라 멸망 이후 13대 달라이 라마는 독립을 선언함. 하지만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침공하여 점령함.

 

이건 티베트 신화인데 진화론과 과거 티베트 지역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서 개인적으로 좀 신기하다고 생각함.

 

3. 좡족

좡족의 민속종교 마교의 상징

중국 최대의 소수민족으로 주로 광시 좡족 자치구에 살고 있음. 광시의 토착민으로 좡어와 광둥어를 사용하며 좡어는 따이까다이어족에 속함. 따이까다이어족은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서 사용되는 어족이며 태국어와 라오어가 이에 속함. 과거에는 한자를 기반으로 한 '방괴장자'라는 문자를 사용하였으나 1955년 라틴어 모음을 기초하여 좡족 문자를 만들었음.
 
좡족의 좡은 강하고 억세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광시 자치구는 '반란'의 땅으로 불리기도 함. 정권의 반역자들이 광시로 도망치거나 귀양 온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임. 자손들도 멸시와 차별을 받다보니 사회 불만 세력으로 자람. 태평천국의 난도 광시 좡족 자치구에서 일어났으며 이 반란에는 좡족이 깊이 개입함.

 

4. 만주족

베이징 후와랴순 후와랴카궁 왼쪽부터 몽골문자, 티베트문자, 한문, 만주문자 순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 책 '노걸대' 에 나온 만주어

좡족 다음으로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 한국사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민족임. 한국인과도 유전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음. 만주족은 한족의 인구수에 밀려 대다수가 한족화되었고 또한 청나라 시기에도 만주어보다 한족의 언어를 쓰는 인구가 많아 만주어는 점점 사어가 되어가고 있었음.
 
말갈족이었던 여진족의 후신으로 시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름.
 
만주와 연해주에서 발상한 퉁구스계 민족으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계승하여 후금을 건국하고 원나라의 전국옥새를 얻은 뒤 원나라를 계승하여  청 제국을 건국함.
 
중국에서는 만주족이라는 말 대신에 '만족' 이라는 말을 더 많이 씀. 그 이유는 만주족이라는 이름이 만주라는 영토를 만주족이라는 특정 민족의 몫으로 두는 느낌이 강하기때문. 또한 과거 일제에 의한 세워진 괴뢰국 '만주국'이 떠오르기 때문이기도함. 또 현재는 민족의 명칭보다는 지역명(동북3성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으로 불리는게 일반적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만주족 운명은 매우 비참해짐. 특히 태평천국의 난과 신해혁명의 성격이 반청복명, 반만흥한 이었고 이때 혁명파와 한족들이 만주족을 학살하기도함. (이때 만주족은 정말 많이 죽었음.) 남의 나라(한족의 나라)를 정복해서 지배자로 군림하며 악행을 저질렀고 나라를 망친 주범이라는 분노에 반만주주의 폭동이 벌어지기도함.
 
청나라를 멸망시킨 중화민국(대만)의 국가 정당인 '중국 국민당'은 한족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만주족에 매우 적대적이었음. 그래서 만주족에게 가혹한 탄압을 가함. 그래서 국공내전에 참여한 만주족들은 공산당의 편에서 싸움. 당시 중국 공산당이 한족 민족주의가 아닌 평등을 구호로 내세우기도 했었음. 그리고 현재의 대만 또한 생각보다 한족 중심사고가 짙고 의외로 대만인들이 한국을 한족의 속국으로 생각하는 등 역사왜곡도 꽤함..ㅋ 물론 일부 만주족 중에서도 중국 국민당과 결탁한 일파도 존재함. 이들은 국공내전 때 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함. 대만의 만주족들이 대부분 이들의 후손이며 국공내전 전에 이주한 만주족은 이미 한족화되었음.
 
또 역사적 편견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주족은 유목민족이며 그들의 문화랄께 딱히 없었고 야만적이었을 것이다고 생각하는데 틀렸음. 만주는 삼림지역이기 때문에 대부분 농업과 수렵채집을 했으며 또한 고유어인 만주어와 교유문자인 만주문자도 있었음. 수준 높은 불교 문화와 유교 문화도 가졌었고.

 

5. 조선족

연변

연변

연변

조선족은 한국계(한민족계) 중국인임. 중국어로는 챠오시엔주라고함. 한족을 제외한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수로는 13위임. 주로 옛 만주지역인 동북3성(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지린성)에 거주하지만 취업 등을 이유로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등의 대도시로 대거 이주하고 있음. 1880년대부터 조선족은 혼혈화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조선족의 상당수가 한족의 혼혈임.
 
동북3성에 한국계 사람들이 거주했던 역사는 굉장히 길지만 현대적인 조선족의 개념은 19세기 말 한반도 북부에 대기근이 발생하자 조선인들이 먹고 살기위해 대규모 이주한 것으로부터 시작됨.
 
이로 인해 청나라와 조선간의 국경분쟁이 있었으며 조선에서는 두만강 건너편의 조선족 거주지를 북간도 압록강 건너편의 조선족 거주지를 서간도  라고 불렀음.
 
조선인들의 이주 현상은 1885년 청나라 정부가 만주 이민 금지령을 철폐하면서 크게 증가하기 시작함.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약 26만명으로 추정되며 1910년부터는 일제에 의해 수 많은 가난한 조선인들이 위안부,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가 동북3성에 강제로 거주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조선족으로 남겨짐. 그래서 현재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중에는 동북3성의 연변, 창바이가 고향인 분들이 많음.
 
또한 1931년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간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부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움. 1932년에는 만주국에서는 '만주개척운동'이라는 정책으로 조선인 출신 군인, 사업가, 교사 등을 이주시킴. 이후에 만주에 살던 조선인의 수는 1945년까지 216만명까지 급증하였으며 간도 지역 뿐 아니라 만주 전역에 다양한 직업의 조선인이 흩어져 만주국 내에 거주하던 조선인 인구가  3백만이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짐. 일제가 패망하자 만주에 살던 조선인 절반이 조선으로 귀국하였지만 귀국할 방법이 없던 나머지 조선인들은 중국에 남아 조선족이 되었음.
 
귀국한 이들은 대부분이 독립운동가와 만주개척 당시 만주국으로 파견된 조선인이며(매국노) 남은 이들은 가난을 피해 이주한 조선인들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임. 귀국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을 건국하는데 역할을 하였음.
 
또한 중국에 남아있던 일부 조선의용대 출신자들은 중국 국민당을 배격하고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공산당을 도와 전쟁에 적극참여하여(앞서 얘기했다시피 공산당은 초기에 한족 민족주의가 아닌 평등주의를 내세워 대부분의 소수민족이 공산당 측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음) 대우 받는 소수민족이 되었으나 얼마지나지않아 문화 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조카 마오위안신이 연변에 건너와 민족 분쟁을 일으켰고 많은 조선족 희생자를 만들었음. 또한 홍위병 단체를 조직하여 조선족을 탄압하였고 당시 강간, 살해당한 조선족 피해자는 수만명에 달한다고 함.
 
대표적인 조선족 인물 중 한명이 바로  엔시티 드림의 런쥔(황인준)이며 길림성 출신이라고 함. 사실 정확한 피셜이 나온 건 아니지만 길림성의 조선족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보아 조선족일 가능성이 크다고 함.

 

한국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조선족이지만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한국인과 같은 민족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상당수가 일제 피해자의 후손이자 홍위병 피해자의 후손임.

 

이외에도 중국에는 몽골족(몽골, 내몽골자치구에 주로 거주)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족과 몽골의 민족은 형제이기는 하나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함.. 그래서 만약 중국이 분열되었을 때 몽골이 흡수 통일을 시도하려다 분쟁이 일어나고 이러지않을까..싶기도

 

러시아족(슬라브족의 일종으로 주로 신장에 거주)

 

우즈베크족(중앙아시아에 사는 투르크어계 민족으로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에 거주)

 

징족(베트남계)

여기도 몽골족처럼 베트남이랑 형제이기는 하지만 사이는 그닥이라고 알고있음

 

시버족 (선비족계통으로 알려져있으며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신장자치구에 주로 거주하고 있음)

등의 여러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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